검색결과
' 학원자유수호투쟁위원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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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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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목원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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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31784
날짜 : 1986.03.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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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宣言文[대학의 자유수호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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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0084
날짜 : 1971.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자행한 학원내 교련 및 군사교육, 학원사찰 등을 비판하는 내용. -정부의 탄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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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聲討文[강압교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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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0091
날짜 : 1971.04.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강압교련에 관련해 우리들 요구가 관철될때까지 과감히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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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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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들불처럼 번진 유신헌법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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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신임했기 때문이었다.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범투위)의 대변인이었던 장준하는 조홍규, 김도현, 이부영 등 범투위 내 청년위원들을 무척 아끼고 신뢰했다. 장준하가 국회의원 신분이던 시절, 이부영이 자신의 비서 손수향과 결혼한 인연을 계기로 더 각별해진 까닭도 있었다. 세 사람은 취지문과 성명문의 문안을 검토하고 수정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선언문 초안에 대한 문안 수정은 새벽녘에야 끝났다. 완성된 문안과 서명 양식을 잘 마무리한 그들은 며칠 전부터 비밀리에 약속해놓은 등사집에 가지고 가서 프린트를 했다.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에서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개헌청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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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이자, ‘민통련’의 깃발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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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지금 끓어오르는 반독재 투쟁의 열기를 모으고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일한 지도 체제의 강력한 연합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앞장 서셨던 어른들, 지학순 주교라든가, 함석헌 선생이라든가 문익환 목사 같은 명망가 어른들의 참여가 필요하구요.” “그건 국민회의 쪽 장기표 선생과도 같은 생각이군요.” “그렇습니다.” 민민협(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출신의 선비적인 인상을 한 이부영은 김근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김근태를 만나러 온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민민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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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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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입후보 예상자의 선거 전망과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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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1.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3. 교육 : 학원의 영리화 방지, 과학교육 중시, 의무교육 기한 연장 4. 외교의 쇄신 : 아시아·아프리카·중립국과의 소통 강화, 한일문제의 조속한 해결, 병역 부패 해소, 군대의 과학화와 정병주의 5. 민족주체세력 증강 : 대중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체사상 기본 이념 강조, 대외적으로 민족자결주의 대내적으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균등이 융합된 민족주의 민주사회주의 사상의 구체화, 통일과업 촉진, 통일한국의 주도권 장악 장택상(반공투쟁위원회) 정치, 경제, 사회의 부패성 일소이다. ◇ 동일티켓제 개헌 선거 공약 관련 질문 질문5) 정·부통령 동일티켓제도에 대한 의견은? 선거 전에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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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 학원의 자유 주장하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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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하더라도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고 결의한 다음 결의문을 정식으로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구고 학생위원회 위원장이 경북고를 찾아와“우리는 이미 교문을 나섰다”라고 함으로써 경북고 학생들 사이에 시위에 대한 기운을 복돋았다. 이에 경북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기 시작하며“학생위원장은 뭣하는 놈이고!”를 부르짖었다. 이대우가 선두가 된 학생운영위원들은 두터운 두루마리 결의문을 갖고 조회단에 올라“일요일날 학생들을 등교시키는 폐습을 시정시키고 학원 내의 자유를 찾기 위해학원 내의 여론을 사회에 반영시키자”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교사들의 제지와 시간이 없다는 학생들의 외침에 결의문은 1/3정도 건너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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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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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10
분류 : 시위 상황
요약설명 : 선거를 닷새 앞둔 10일 대전에서는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이 시위 계획 탄로로 경찰에 연행된 친구들을 석방하라며 시위를 일으켰다. 이들은 3월 8일 대규모로 발생한 대전고등학교 학생시위에 이어 또 다시 대전에서 시위를 일으켜 주목을 받았다. 충주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과 수원농업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도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대구에서는 ‘백만학도여 일어나라’는 삐라가 시내에 나붙었고, 부산에서는 민권수호전국학생투쟁위원회 이름으로 교직원의 선거간섭을 비난하는 삐라가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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